
솔직히 저는 부동산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공급만 늘리면 집값은 잡힌다"는 말을 꽤 오래 믿었습니다. 몇 년간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공급과 규제, 세금이 맞물리는 방식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보유세와 세제 구조: 수치가 보여주는 불편한 현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세제에서 핵심 문제 중 하나는 보유세(property holding tax) 구조에 있습니다. 보유세란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OECD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은 2022년 기준 약 1.0% 수준으로, 미국의 2.9%, 영국의 3.1%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출처: OECD Tax Statistics(https://www.oecd.org/tax/tax-policy/tax-database/)).
보유세가 낮다 보니 여러 채를 사 모아도 실질적인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다주택자 고객들과 일을 해보면서 느낀 건, 보유 비용이 낮으면 굳이 매물을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들고 있으면 오르거나 최소한 손해는 안 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무조건 보유세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제 경험상, 임대인들은 세금 부담을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전월세 전환율(임대 수익률을 기준으로 전세금을 월세로 환산하는 비율)이 오르면서 무주택 세입자들이 더 큰 피해를 받는 구조가 됩니다.
제가 특히 주목하는 문제는 과세 기준입니다. 현재 세제는 주택 수를 기준으로 중과세하는 방식이라 다주택자보다 고가의 단독 주택 한 채를 가진 사람이 세금 부담이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의 수요가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집중되고, 강남이나 마포 같은 핵심 지역의 고가 주택 가격이 먼저 뜁니다. 나머지 시장도 이를 기준 삼아 따라 오르는 연쇄 작용이 생깁니다. 주택 수가 아니라 보유 주택의 총 공시가액을 기준으로 과세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근로소득세(earned income tax)와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의 불균형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근로소득세란 노동을 해서 버는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이고, 자본이득세는 주식이나 부동산 매각 차익에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열심히 일해 버는 소득에는 높은 세율이 적용되면서, 부동산 투자 차익에 대한 실효 세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이 구조 자체가 시장에 "일하는 것보다 투기하는 게 낫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세제의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보유세 실효 세율이 OECD 평균의 절반 이하로 낮아 다주택 보유 부담이 적음
- 주택 수 기준 중과세로 인해 고가 단독 주택('똘똘한 한 채') 수요 집중
- 근로소득 대비 자본이득 세율이 낮아 투기 유인 구조가 고착됨
- 보유세 인상 시 임대인이 세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음
공급확대의 함정: 수요분산이 먼저다.
공급확대가 최우선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2022~2024년 3년간 주택 인허가 물량이 급격히 줄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연평균 40만 호 수준에서 25만 호 이하로 감소했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통계누리(https://stat.molit.go.kr)). 공급 부족이 문제라는 진단 자체는 맞습니다.
다만 어디에 공급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수도권 과밀화(metropolitan concentration)란 인구와 경제 기능이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만 집중적으로 공급을 늘리면, 그 공급이 다시 수요를 불러들이는 역설이 생깁니다. 제가 몇 년간 업무를 하면서 느낀 건, 강남에 아파트 한 단지가 생기면 "강남에 뭔가 더 생기겠네"라며 주변 가격이 함께 오르는 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수도권에 공급이 집중되면 지방 인구 유출은 더 가속화됩니다. 세수 기반이 줄어드는 지자체는 공공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고, 그 격차가 다시 수도권 집중 욕구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됩니다. 부동산 문제를 부동산만으로 보면 안 되고, 교육·일자리·인프라 투자와 함께 지방에 실질적인 수요를 만들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합니다.
재건축·재개발(urban renewal) 역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재건축·재개발이란 노후 건축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사업으로, 공급확대 효과가 있지만 입지 프리미엄을 더욱 강화해 핵심지 가격을 올리는 부작용도 함께 발생합니다. 제 경험상 재건축 사업이 활발해질수록 해당 지역 주변 전월세 시장도 들썩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간 부채(private debt) 문제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민간 부채란 가계와 기업이 금융기관에서 빌린 총부채를 의미합니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3년 기준 약 101%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이 부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할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에 충격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일본의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장기 경기침체로 이어진 사례를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부동산 문제는 단기 처방이 통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저는 공급이 수요를 선행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분산되는 방향에 맞춰 공급이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규제와 세금만으로는 시장을 이길 수 없고, 사람들이 실제로 지방에 살 이유를 만들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서울 집값 앞에서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부동산은 현상을 잡으려 하면 안 되고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세제, 금융, 공급, 지역 균형 발전이 동시에 맞물려야 의미 있는 변화가 생깁니다. 당장 눈앞의 집값을 누르는 것보다, 10년 후에도 작동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부동산 또는 세무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투자나 세금 문제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